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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중앙지검에 통보..총장 수사지휘권 박탈로 지휘권 상실 상태”
“독립적 수사본부 구성안은 법무부가 제안”..추장관 건의 거부에 불편한 심기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 수사를 검찰총장이 지휘하지 말라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 지휘를 사실상 전면 수용했다.파워볼실시간

다만 대검은 추 장관이 전날 거부한 절충안이 ‘법무부가 제안하고 공개를 건의한 것’이라며 추 장관이 윤 총장의 건의를 즉각 거부한 것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대검찰청은 9일 “채널A사건을 서울중앙지검이 자체적으로 수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수사지휘권 박탈은 형성적 처분으로서 쟁송절차에 의해 취소되지 않는 한 지휘권 상실이라는 상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형성적 처분이란 처분하는 것만으로 다른 부수적인 절차 없이 효력이 발생하는 법률 행위를 뜻한다.

추 장관의 수사지휘로 윤 총장이 ‘검언유착’ 사건을 지휘할 수 없는 상태인 만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앞으로 독립적으로 수사를 하게 된다는 뜻이다.

윤 총장이 추 장관의 수사 지휘에 대한 수용 여부를 직접적으로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이미 발효 중’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추 장관의 지휘를 사실상 수용한 셈이다.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일주일만에 나온 윤 총장의 최종 입장이다.

대검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검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검은 이날 오전 이런 사실을 서울중앙지검에 통보했다고 덧붙였다.

대검은 “검찰총장은 2013년 국정원 사건 수사팀장의 직무배제를 당하고 수사지휘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라며 윤 총장의 과거 사례도 언급해 이번 수사지휘가 부당하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실시간파워볼

또 대검은 전날 절충안이 물밑교섭 과정에서 법무부가 먼저 제안한 안이라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윤 총장의 건의를 즉각 거부한 추 장관에게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대검은 “장관의 지휘권 발동 이후 법무부로부터 서울고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독립 수사본부 설치 제안을 받고 이를 전폭 수용했고 어제 법무부로부터 공개 건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밝혔다.

법무부가 먼저 독립수사본부 구성안을 제안하고 공개를 요청했음에도 법무부의 수장인 추 장관이 이를 즉각 거부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취지다.

다만 일각에서는 법무부 고위간부 검사들과 대검 검사들이 추 장관이 절충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이를 강행한 것이 화근이 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추 장관이 수사지휘권 발동 이후 특임검사 등 제3의 방안 가능성에 대해 ‘장관의 지시에 반하는 것’이라고 수차례 쐐기를 박은 것도 법무부와 대검간 진행 중이었던 물밑교섭 등에 대한 추 장관의 경고 메시지였다는 것이다.

가해 운전자, 운전면허 취소 수치 나와..”피해자들 보지 못했다”

(이천=연합뉴스) 류수현 기자 = 도로 가장자리를 달리던 마라톤 대회 참가자 3명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사고 현장 [독자 송영훈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사고 현장 [독자 송영훈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9일 오전 3시 30분께 경기 이천시 신둔면 편도 2차로 도로에서 A(30)씨가 몰던 쏘나타 차량에 B(61)씨 등 3명이 치였다.파워볼게임

온몸을 크게 다친 B씨 등 3명은 병원으로 이송되는 도중에 숨졌다.

이들은 부산시 태종대에서 경기 파주시 임진각까지 달리는 ‘2020 대한민국 종단 537km 울트라 마라톤 대회’ 참가자로 알려졌다.

지난 5일 오전 6시 태종대를 출발한 이들은 일정대로라면 오는 10일 오후 1시까지는 임진각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B씨 등은 이날 구간 곳곳에 설치된 ‘체크포인트’에서 안전장비 등을 점검하는 등 휴식을 취하고 다시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를 당했다.

사고는 체크포인트 지점에서 불과 500∼600m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으며, 마라톤 대회 진행 요원이 이를 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B씨 등은 각자 등에 짧은 막대 모양의 ‘시선 유도봉’을 장착한 채로 도로 가장자리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사고를 낸 차량 [독자 송영훈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사고를 낸 차량 [독자 송영훈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A씨의 차는 뒤에서 이들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당시 해당 지점을 지나던 마라톤 참가자는 이들뿐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A씨를 상대로 음주 측정을 한 결과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 수치는 운전면허 취소 수준(0.08%)을 넘은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B씨 등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씨 등을 상대로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한편 사고가 난 마라톤 대회 주최·주관 기관인 ‘대한울트라마라톤연맹’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사고대책본부를 꾸렸다고 밝혔다.

연맹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안타까운 마음뿐”이라며 “경찰이 자세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는 만큼 연맹에서도 사고 수습을 위해 최대한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맹은 2000년부터 격년으로 대한민국 종단 537km 대회를 열고 있다. 올해 참가자는 70여명으로 알려졌다.

맞아 죽더라도 잘못된 군 역사 하나는 바로잡겠다고 각오했다. 독립군과 조선인을 죽이고, 전공을 과장해 스스로 영웅이 된 백선엽이 국립현충원에 묻힌다면 역사의 후환을 면치 못할 것이다.

ⓒ시사IN 조남진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박경석 예비역 준장은 “나쁜 것까지 가지고 가는 보수는 참된 보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시사IN 조남진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박경석 예비역 준장은 “나쁜 것까지 가지고 가는 보수는 참된 보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박경석 장군(88·예비역 육군 준장)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야전에서 두루 거친 노병이다. 한국전에서는 화랑무공훈장을, 베트남전에서는 최고 무공 수훈인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했다. 그는 이른바 ‘육사 생도 2기’ 출신이다. 1950년 6월1일 첫 4년제 정규 육군사관학교 생도로 입교했다가 20여 일 만에 6·25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임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전장에 투입됐다. 박경석과 함께 포천 전투에 참가한 동기생 330명 중 86명이 초기에 전사했다. 17세의 초급장교였던 박경석도 전투 중에 수류탄 파편에 맞아 몸의 왼편을 크게 다친 와중에 인민군 포로가 됐다. 그가 포로가 된 뒤 부대에서는 전사자로 처리한 다음 서울 동작동 국군묘지(국립현충원)에 가묘를 설치했다. 집에서는 장례식까지 치렀다. 지금도 동작동 국립현충원 15-2묘역에는 ‘고 육군 소위 박경석의 묘’가 그대로 남아 있다(박경석은 지금도 우울할 때면 자신의 묘지를 찾아가 상한 마음을 달랜다고 한다).

인민군 10사단에 포로로 잡힌 박경석은 심문을 받다가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석방됐다. 이후 원대 복귀한 그는 1950년 겨울 평창 전투에 참가해 큰 전공을 세우고 무공훈장을 받았다. 베트남전에서는 맹호부대 초대 ‘재구대대장(강재구 소령 추모 대대)’을 맡아 전공을 세웠다. 귀국해서 군 생활을 휴전선 등 야전에서만 보내던 그는 박정희 정권 아래 독버섯처럼 자라던 군내 정치 사조직에 맞서 입바른 말을 곧잘 했다. 이 일로 일찌감치 정치군인들 눈 밖에 난 박경석은 1975년 늦깎이 장군으로 진급한 뒤 1980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을 끝으로 군을 떠났다. 당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전두환 신군부가 그에게 진압 부대에 무공훈장을 수여하도록 심사를 맡아달라고 강요했다. 그는 단호히 거부하고 스스로 군복을 벗었다.

야전 군인 박경석은 초급장교 시절부터 ‘숨은 문인’이라는 특이한 이력도 갖고 있다. 그는 육군 대위 때 필명 ‘한사랑(韓史郞)’으로 등단해 틈틈이 시와 소설을 썼다. 산전수전 다 겪은 야전 경험을 토대로 지금까지 총 83권의 저서를 냈다. 이 가운데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시기 명장으로 꼽히는 김홍일과 채명신 등 원로 장성 15명에 대한 평전과 회고록도 포함돼 있다. 현재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등 전국의 군 시설 11곳에는 박경석의 시비가 들어서 있다.

군 예편 이후 문인이자 군사평론가, 군사연구자의 길로 들어선 박경석은 왜곡되고 굴절된 한국 군사(軍史)를 바로잡는 데 일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한다. 6·25전쟁 과정의 ‘가짜 영웅’ 실태를 조사하고,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국군 창설 초기 친일파와 독립군 장교를 연구했다. 특히 6·25전쟁 영웅으로 알려진 백선엽이 일본군 간도 특설대에서 독립군을 토벌하는 데 앞장서고 일왕에게 충성을 다짐했던 숨은 행적을 추적하는 데 오랜 기간 매달렸다. 더 나아가 한국전쟁 과정에서 ‘육탄 10용사’ ‘육탄 5용사’라는 일본군과 비슷한 영웅담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서도 꼼꼼한 사실조사를 벌였다. 그는 6·25 영웅담이 상당수 날조·과장되었다고 주장한다. 당시 일본군 출신 지휘관들이 부하의 죽음을 자신의 공적으로 미화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했다는 것이다.

2010년 무렵 이명박 정부는 백선엽을 한국군 최초 명예원수(5성 장군)로 추대하려고 시도했다. 이때 박경석은 자신이 필생의 과업으로 모아온 친일 행적 근거자료 등을 토대로 앞장서 반대했다. 외로운 그의 외침에 쟁쟁한 군 원로들이 동참했다. 이런 기세에 눌린 이명박 정부는 결국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 작전’에 백기를 들었다.

민족사 최대 비극인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또다시 백선엽이 소환됐다. 이번에는 그의 사후 국립현충원 안장을 둘러싼 논란이다. 박경석은 이 논란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대전 유성구에 사는 박경석 장군 자택을 찾았다. 80대 후반의 고령임에도 시종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한 그는 한국전쟁 70주년이 되도록 백선엽 미화에 매달리는 보수 진영에 대해 ‘가짜를 알면서도 신봉하면 참된 보수가 아니다’라고 개탄했다.

일본군 출신 장교들을 연구해오셨는데.

일본 군대 출신 장교라고 무조건 척결 대상으로 보지는 않는다. 비록 일본군 출신이라 해도 독립운동을 직접적으로 탄압하지 않고 해방 뒤 잘못을 인정한 다음 대한민국에 기여한 장군들도 많다. 자칫 잘못하면 백선엽 때문에 그분들까지 한꺼번에 매도당할까 하는 걱정이 없진 않다.

일본군 출신 사이에도 차이점이 있다?

그렇다.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안 하고는 천지 차이다. 이종찬, 이한림 장군은 일본군 출신이었지만 과거 잘못을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김종오 장군도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그분들은 백선엽처럼 간도 특설대에 근무하거나 독립운동가를 혹독하게 다룬 적이 없다. 그러나 백선엽, 정일권 같은 일본군 출신은 끝까지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다.

간도 특설대 근무가 문제인 이유는?

일제 만행을 담은 역사 화보에서 사람 목을 칼로 베는 장면이 바로 간도 특설대가 조선 사람 죽이는 모습이다. 오랑캐의 손으로 오랑캐를 잡는다는 ‘이이제이 전법’을 적용해 조선인 손으로 조선인을 잔인하게 제압하라고, 일본군이 만든 부대가 바로 간도 특설대다. 백선엽은 간도 특설대에 지원병으로 들어간 사람이다. 일본과 중국에서 관련 증거서류를 다 확보했다. 국내에 나도는 백선엽의 간도 특설대 활동 증거는 모두 내가 수집해온 것이다.

자료를 어떻게 입수했나?

일본에 건너가서 간도 특설대 연구 전문가인 다나카 히사이로 박사를 만났다. 그가 모든 관련 자료를 넘겨줬다. 보니까 기가 막혔다. 백선엽은 한국군 생활을 마친 박정희~전두환 정부 시절에 일본을 오가며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일본어판 회고록까지 냈더라. 일본 만주군관학교 동기생들 모임에 나가서 간도 특설대에서 근무한 게 영광이라는 연설도 했다. 독립군과 조선인을 죽인 것도 군인으로서 임무를 수행한 거라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더라.

백선엽은 1993년 일본에서 〈간도 특설대의 비밀〉이란 회고록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가 전력을 다해 독립군을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일본을 배반하고, 오히려 항일 게릴라가 되어 싸웠다고 해도 대한민국 독립이 빨라졌으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이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라는 소회를 밝혔다.

백선엽 같은 일본군 출신을 중용한 이승만 정부의 책임이 크지 않나?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군 출신을 활용했지만 나름 최소한도의 안전장치를 두었다. 국방부 장관을 광복군 출신 독립운동가인 이범석 장군으로 앉혔다. 일본군 출신들에 대해선 후보생으로 받아 한국군 소위에서부터 시작하는 코스를 밟게 했다. 건국과 창군 초기에 어쩔 수 없이 일본군 출신을 썼지만 원칙은 지켰다고 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야심차게 밀어붙이던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를 좌절시켰는데.

간도 특설대에서 독립군을 잡았던 사람이 초대 명예원수가 되고, 영웅으로 부각된다면, 대한민국이 뭐가 되겠나? 대한민국 최초의 명예원수 추대라면 그 의미와 상징성이 매우 크다. 6·25전쟁 참전 원로 장군들이 백선엽 영웅화를 이구동성으로 반대했던 이유도 그것이다.

백선엽이 저지른 친일행위보다 6·25전쟁의 공을 더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6·25전쟁사를 모르는 일반인, 특히 정치인들은 마치 낙동강 다부동 전투에서 백선엽이 인민군을 다 막아서 대한민국이 구출된 것처럼 주장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낙동강 전선이 240㎞였다. 그 전선에서 한국군 5개 사단과 미군 3개 사단, 즉 8개 사단이 합심해서 방어해낸 것이다. 백선엽은 그중 일부분이었을 뿐이다.

낙동강 방어에서 미군도 큰 역할을 했다.

미국 공군 B29 폭격기가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한·미 연합군 8개 사단을 지휘하면서 불퇴전의 결의로 앞장섰던 미군 워커 장군의 공도 컸다. 워커 장군은 나중에 교통사고로 작고했지만 우리 정부도 낙동강 전선의 공로를 기려 그의 이름을 딴 ‘워커힐 호텔’까지 만들었다. 훗날 일각에서 백선엽이 낙동강 전선을 혼자 사수한 것처럼 과장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누가 과장했나?

6·25전쟁 공로를 과장해 스스로 영웅화한 주역은 백선엽 자신이었다. 그는 군복을 벗은 뒤 박정희 정부 때부터 30년간 전쟁기념관에 사무실을 두고 출근하면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을 자원해 맡았다. 참전하지 않고 당시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이고, 백선엽 장군이 내신 6·25 관련 책이니까’라며 덮어놓고 찬양했다. 그러나 참전 장군들은 다 안다. 그분들은 백선엽 장군을 영웅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6·25전쟁의 진짜 영웅이 있다면?

당시 전쟁기를 통틀어 김홍일 장군과 김종오 장군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김홍일 장군은 중국 정규군 중장 출신으로 일제 말기 임시정부 광복군 참모장을 지냈다. 6·25전쟁 초기 김홍일 장군 아니었으면 ‘대한민국’ 글자가 없어질 뻔했다. 이 역사가 아직까지 너무 묻혔다. 일본군 출신 백선엽 때문에 묻혔다. 국민들이 거의 모른다.

ⓒ연합뉴스1955년 9월27일 제1군사령부 주최 전군사격대회에 참석한 정일권 육군참모총장(앞줄 가운데)과 각 군단장. 앞줄 맨 오른쪽이 당시 1군사령관이었던 백선엽 대장.
ⓒ연합뉴스1955년 9월27일 제1군사령부 주최 전군사격대회에 참석한 정일권 육군참모총장(앞줄 가운데)과 각 군단장. 앞줄 맨 오른쪽이 당시 1군사령관이었던 백선엽 대장.

묻힌 이야기는?

6·25 개전 초기 국군이 무너져 내렸다. 개성의 1사단장 백선엽 대령은 전날 서울 육군회관 파티에 외출 나갔다가 6·25가 터진 그날 오전까지 부대에 나타나지 않았다. 사단장이 없는 동안 닥친 전쟁에서 1사단은 속수무책 후퇴했다. 임진강 남쪽의 일부 병사들이 고향 집으로 달아나버릴 정도로 부대는 엉망진창이 됐다. 백선엽에겐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이었다. 유재홍 준장의 의정부 7사단도 무너졌다. 춘천 지구를 방어하던 김종오 대령의 6사단만 제대로 싸우며 3일을 버텼다. 김종오 대령은 (전쟁 발발 전부터) 위기의식을 느끼며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다. 대대장 이상 계급에 대해 전부 외박을 금지해두었다.

1사단과 7사단이 붕괴되자 김홍일 장군이 군 원로회의를 소집해 신성모 국방부 장관과 채병덕 총참모장을 앞에 두고, (북한군에 쫓겨 내려오는) 부대를 수습해서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자고 주장했다. 신성모와 채병덕은 반대했다. 대구·광주·대전의 후방 3개 사단을 서울 근방으로 불러올렸지만 올라오는 족족 인민군의 공세에 붕괴됐다.

당신은 어디에서 싸웠나?

그때 나는 육사 생도로서 포천 전투에 나갔다. 부대가 완전히 붕괴되어 86명이 계급·군번도 없이 전사했다. 후퇴해서 수원으로 내려와 특공대를 모집해 한강 방어선에 참가했다. 광복군 원로인 김홍일 장군이 신성모·채병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만든 방어선이었다. 김홍일 장군이 한강 방어선을 적극 주장하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그를 시흥지구 전투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김홍일은 장교와 헌병을 진두지휘하면서, 1번 국도와 야산을 통해 썰물처럼 퇴각해 내려오는 국군 패잔병을 수습해 만든 임시 사단을 한강에 배치했다.

그해 6월28일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이 이틀을 주춤한 이유가 있다. 우선 북측은 한강 이북 서울 중심부를 점령한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을 다 차지한 거나 다름없다고 자만했다. 당시 북측은 인민군 2사단이 춘천에서 국군 6사단을 물리친 뒤 이천을 거쳐 수원 남방에 포위망을 구성해서 한국군을 궤멸시키는 작전을 세웠다. 그런데 춘천에서 (김종오의) 국군 6사단이 잘 버티며 그 작전을 무산시켰다.

아주 교묘하게 맞물렸다. 김홍일 장군이 한강 방어를 안 했거나 춘천에서 김종오 대령이 인민군을 막지 못했다면 나라가 무너지는 판국이었다. 두 사람의 작전이 맞아떨어지면서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르는 사흘을 얻은 것이다.

개전 직후 사흘이 중요했던 이유는?

미국 조야에서는 초기 전세로 판단할 때 참전 시점이 늦었다고 봤다. 오키나와로 이승만 정부를 망명시킨다는 말까지 돌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김홍일과 김종오가) 초반 3일을 벌면서 미군과 유엔군의 참전 결정에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다. 대한민국 구출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김홍일 장군과 김종오 대령의 공로는 백선엽의 초기 행각에 대비해보면 철저히 과소평가되었다. 이런 구체적인 전쟁사를 요즘 군인이나 군사 전문가들은 잘 모른다. 백선엽 영웅 만들기에 가려져버렸다.

백선엽의 1사단 병사들이 개전 초기에 인민군 전차를 육탄 돌격으로 막았다는데.

일본군 출신 일부 장군들이 스스로를 전쟁 영웅으로 미화하기 위해 과장하고 날조했다. 적 전차를 육탄으로 부쉈다는 심일 소령과 ‘육탄 5용사’, 적 토치카를 맨몸으로 파괴하고 장렬하게 산화했다는 ‘육탄 10용사’ 사건이 대표적인 해프닝이다. 육탄 10용사 중에서 한 병사가 북한 방송에 나와 귀순 월북을 종용한 사건은 (우리 군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런 영웅들을 기리는 동상이 아직도 육사에 그대로 남아 있고, 교과서에도 실렸는가 하면 군가까지 만들어 불렸다. 그 뿌리는 일본 군국주의에 있다.

어떤 뿌리인가?

일제하 초등학교 교과서에 태평양전쟁에서 적의 전차를 파괴하고 목숨을 던진 ‘육탄 3용사’의 영웅담이 게재돼 있었다. 당시 조선 청소년들에게 그 글에 감동하라고, 혈서를 쓰라고 강요하면서 일왕에 대한 충성을 다짐시켰다. 그 영웅담은 일본 패전 후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백선엽 같은 일본군 출신 장군들이 똑같은 수법을 6·25전쟁사에서 되풀이한 것이다.

백선엽 장군이 6·25전쟁 가짜 영웅 만들기에 개입했다는 근거가 있나?

일본군 출신 장군들이 나에게 구체적으로 육탄 용사 영웅 만들기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일본군 출신인 손 아무개 장군이 나에게 직접 그러더라. “월남전 영웅으로는 강재구 소령이 있지만, 일본군 출신 중엔 영웅이 하나도 없지 않으냐. 백선엽 장군이 직접 나서서 타당성을 주장하시는데 박경석 장군이 좀 도와달라.”

심일 소령에 대해서는, 내가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으로 당연직 공적심사위원장을 맡았던 1980년대 초반의 1차 조사 당시, ‘이미 허구가 드러났다’고 거절했다. 그랬더니 나를 백선엽 장군 방으로 데려가더라. 백선엽은 그 자리에서 나에게 ‘심일 소령을 영웅으로 만들자’고 이야기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거절하며 그 자리를 나와버렸다. 그런데 3년쯤 지나니까 육군사관학교에 심일 소령 동상을 세우고 ‘심일상’을 제정했다. 내가 손 장군한테 전화해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손 장군은 “백선엽 장군이 참모총장한테 특별히 부탁해서 성사시킨 거니까 그런 줄로만 알고 잠자코 있어달라”고 했다.

역사의식 없는 역대 국방 수뇌부들이 만든 어이없는 해프닝이다. 육사, 삼사 등 군 간부 양성기관에서는 소위 ‘백선엽 도서 코너’를 따로 만들어 그를 칭송한다. 백선엽이 낙동강에서 싸워 혼자 대한민국을 지킨 영웅으로 만들어지니까,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국전쟁 60주년 기념으로 3개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하나는 명예원수 추대, 하나는 백선엽상 제정, 그리고 정부가 공적으로 간행하는 백선엽 회고록. 이 3개 프로젝트가 이명박 정부에서 결정됐는데, 내가 앞장서서 막았다. 백선엽 영웅화 반대 선언문을 발표했다. 당시 살아 있던 6·25 참전자들이 울분을 토하며 합류했다.

백선엽 지지 세력의 방해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

맞아 죽더라도 잘못된 군 역사 하나는 바로잡고 죽겠다고 각오했다. 독립군을 잔인하게 죽인 일제 앞잡이가 대한민국의 초대 명예원수가 된다면 대한민국이 뭐가 되겠나. 대한민국 건국이념은 어떻게 되나. 자칫 북한의 6·25 남침이 ‘일제 잔재 소탕 전쟁’으로 정당화되면 어떻게 하나? 이걸 바로잡지 않으면 이 나라가 세계적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거다.

보수 진영 내에서는 백선엽을 이순신 장군이나 홍범도 장군에 빗대 칭송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청춘을 야전에서 바친 군인으로서 스스로 보수라 자처하지만 나쁜 것까지 가지고 가는 보수는 참된 보수가 아니다. 가짜와 거짓은 털고 가야지, 속이고 갈 순 없다.

백선엽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논란을 어떻게 보나?

비록 현행법상으로 백선엽이 현충원에 묻힐 자격을 가졌다 하더라도 내가 후손이라면 극구 만류하겠다. 그가 만일 국립현충원에 안장되면 역사의 후환을 면치 못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묻힐 곳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나. 백선엽 장군에게는 현충원 대신 인천에서 선인학원으로 ‘형제애’를 나눈 동생 백인엽씨가 묻혀 있는 가족묘가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한다.

전날 ‘독립 수사본부’ 구성 거절에 이은 입장
“법무장관 수사지휘로 검찰총장 지휘권 상실”

[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윤석열 검찰총장이 탄 차량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2020.07.09. yes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윤석열 검찰총장이 탄 차량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2020.07.09. yes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재환 기자 = 대검찰청이 ‘검·언 유착’ 사건 수사와 관련,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에 추가 입장을 냈다. 추 장관 지휘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휘권은 이미 상실됐고, 이에 따라 현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자체적으로 수사하게 된 상황이라는 취지다.

다만 전날 자신이 추 장관에게 건의한 독립 수사본부 구성은 법무부가 먼저 제안해온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검은 9일 오전 이 같은 내용의 입장문을 출입 기자단에게 보냈다.

우선 대검은 “수사지휘권 박탈은 형성적 처분”이라며 “쟁송절차에 의해 취소되지 않는 한 지휘권 상실이라는 상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 행사할 수 있던 지휘·감독권이 상실됐다는 것이다.

또 “결과적으로 법무부장관 처분에 따라 이 같은 상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서울중앙지검이 책임지고 자체 수사하게 된 상황”이라며 “이런 내용을 오늘 오전 서울중앙지검에도 통보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검찰총장은 지난 2013년 국정원 사건 수사팀장의 직무 배제를 당하고 수사지휘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전날 윤 총장이 제안했던 서울고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독립 수사본부의 설치는 법무부가 제안을 한 것이며, 전날 공개 건의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이윤청 기자 = 소위 '검언 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지시를 내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9일 오전 10시까지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2020.07.08. radiohead@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윤청 기자 = 소위 ‘검언 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지시를 내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9일 오전 10시까지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2020.07.08. radiohead@newsis.com

앞서 윤 총장은 전날 오후 6시께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을 포함한 독립적인 수사본부가 검·언 유착 사건을 맡게 하고, 자신은 지휘·감독을 하지 않는 방안을 추 장관에게 건의했다고 밝혔다.

윤 총장이 이 같은 건의를 하기 전까지 대검과 법무부 차원에서 물밑작업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검찰 안팎에서도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검·언 유착 사건을 특임거사나 별도 수사팀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나왔다.

그러나 추 장관은 1시간40여분 뒤 “총장의 건의 사항은 사실상 수사팀의 교체, 변경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문언대로 장관의 지시를 이행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앞서 추 장관은 지난 2일 검·언 유착 수사에서 윤 총장을 배제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 독립적인 권한을 부여하고, 수사자문단 절차를 중단하라고 수사지휘를 내린 바 있다. 이에 대검은 지난 3일 검사장회의를 소집해 추 장관의 수사지휘의 수용 여부 등을 논의했다.

추 장관은 전날 “국민은 많이 답답하다. 더 이상 옳지 않은 길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면서 “9일 오전 10시까지 하루 더 기다리겠다”며 윤 총장을 재촉하기도 했다.

< 김경수 변호사(前 대구고검장) >
– 추미애-윤석열, 예의나 염치와 먼 언사 나눠 국민 피곤
– 추미애, 너무 직설적
– 윤석열 중재안, 다소 늦은 감.. 그래도 해법은 특임검사 뿐
– 대검-법무부 물밑접촉 뒤집은 추미애, 목표는 윤석열 사퇴
– 윤석열과 이성윤 충돌 속 이성윤 지휘권 유지? 장관 지시 부적절

■ 방송 : MBC 라디오 표준FM 95.9MHz <김종배의 시선집중>(07:05~08:30)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김경수 변호사(前대구고검장)

☏ 진행자 > 지금부터는 법무부, 검찰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뉴스 세 개’시간에도 전해드린 대로 추미애 장관이 지휘권을 발동한데 대해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어제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서울고검장이 지휘하는 독립적인 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수사하도록 하자 안을 내놨지만 추미애 장관은 100분 만에 이걸 거부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요. 이 분 연결해서 자세한 이야기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대검 중수부장이었고요. 대구고검장을 지낸 분입니다. 김경수 변호사 전화로 연결하겠습니다. 나와 계시죠!

☏ 김경수 > 네, 김경수입니다.

☏ 진행자 > 어제 저녁에 상당히 긴박했는데요. 계속 지켜보셨을 것 같은데요. 총평부터 부탁드린다면 상황이 어느 정도로 심각하다고 보세요?

☏ 김경수 > 우선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서로 기본적 예의나 염치나 품위를 멀리한 이런 언사를 서로 나누는 것 자체가 국민들로선 피곤하고 검찰이나 법무부로서도 힘든 상황인 것 같습니다.

☏ 진행자 > 아무튼 상황은 풀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풀어야 되고 결국은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지만 핵심적 쟁점은 딱 하나, 그러니까 추미애 장관은 특임검사는 안 된다고 사전에 못 박아버렸고, 그런데 윤석열 총장은 어제 내놓은 입장에서 서울고검장이 지휘하는 수사본부를 제안을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법무부는 또 사실 이걸 거부를 했고요. 이건 뭐냐하면 장관의 지시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면서 거부를 했는데, 그러면 윤석열 총장이 내놨던 수사본부라는 카드의 성격을 어떻게 봐야 될 것인가, 일단 이 문제부터 여쭤봐야 될 것 같은데요. 변호사님은 어떻게 읽고 계세요?

☏ 김경수 > 지금 물론 장관의 지시에 문언하고는 좀 달랐고 이게 특임검사라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총장이. 그러나 윤석열 총장이 장관에게 보고하고 제안한 것들은 그걸 특임검사 유사한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서울고검장을 특임검사로 임명한 수사팀을 만들겠다, 이런 취지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진행자 > 그렇죠. 그런데 변호사님 말씀대로 사실상의 특임검사라고 본다면 추미애 장관 입장에서는 특임검사는 아니다 라고 못 박아버린 것에 대한 이걸 결국은 무시한 것 아니냐, 이런 식으로 받아들인 것 아닌가요, 추미애 장관은?

☏ 김경수 > 저는 장관은 그렇게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장관이 어떤 지시를 했건 또는 총장이 어떤 건의를 했건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사건 수사를 어떻게 하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룰 수 있을 것인가가 목적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목적에 좀 더 우리가 신경을 써야 되지 않을까 어느 생각을 합니다.

☏ 진행자 > 그럼 어떻게 풀어야 된다고 보세요? 변호사님.

☏ 김경수 > 현실적으로 지금 거론되고 있는 채널A 사건, 검언유착 사건 이것은 사실 특임검사로 푸는 수밖에 없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 진행자 > 그렇게 보세요.

☏ 김경수 > 오히려 윤석열 총장이 지금에 와서야 특임검사 카드를 내민 것은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다고 생각하고 한편으로 법무부 장관은 이 정도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다면 받아들이는 게 저는 옳다고 봅니다.

☏ 진행자 > 해법은 특임검사밖에 없다, 이렇게 보시는 거고요.

☏ 김경수 > 현재로선 그렇다고 봅니다.

☏ 진행자 > 그러면 지금 변호사님께서 보시기에 특임검사는 안 된다고 하는 추미애 장관 판단은 잘못된 것 아니냐, 이렇게 보시는 거네요, 정리하면?

☏ 김경수 > 추미애 장관은 결국 특임검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취지는 뭐냐하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지휘하는 수사팀에서 수사를 하라는 취지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 잘 아시겠지만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이 서로 충돌하는 이런 초유의 사태가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제한하면서 그 충돌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장의 지휘권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 또한 객관성이나 공정성에 시비가 붙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장관이 문언대로 내 지시를 따르라고 하는 것은 다소 좀 부적절한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진행자 > 변호사님께서 조금 전에 잠깐 주신 말씀을 받아서 추가 질문을 드리면 그러면 윤석열 총장이 애초에 처음부터 특임검사 카드를 내놨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 김경수 > 저는 오히려 그때 내놨더라면 지금보다 상황이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합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이런 여러 번의 법무부 장관과 총장 간에 오가는 이런 소위 펀치들이 서로 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볼 때 추미애 장관의 궁극적 뜻이 목표가 이 사건을 얼마나 공정하게 수사하느냐, 여기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조금 예측이고 추측입니다만 윤석열 총장이 물러나게 하는데 목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진행자 > 변호사님 그렇게 보세요.

☏ 김경수 > 네.

☏ 진행자 > 결국 추미애 장관의 최종 바라보고 있는 지점은 윤석열 총장의 사퇴다, 이렇게 보시는 거고요?

☏ 김경수 > 지금 왜냐하면 여러 번의 절충이 가능한 시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안 되고 있습니다. 이건 이 사건을 절충안을 선택해서 뭔가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생각보다는 당신이 마음에 안 드니까 윤석열 총장 당신이 물러나달라 이게 추미애 장관의 뜻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진행자 > 변호사님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계속 나오고 있는 보도가 법무부 검찰국하고 그 다음에 한 보도는 모 고검장이 나섰다는 보도도 있었고 어떤 보도는 대검 기획조정부라는 보도 약간 엇갈리고 있습니다만 검찰 쪽하고 물밑에서 조율을 해왔다는 보도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만약에 이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추미애 장관이 즉각 거부를 한 것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교통정리가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 김경수 > 그건 두 가지 라고 봐야 되겠죠. 하나는 대검이 물밑조율 같은 것 없이 장관 지시를 문언상 어긋나게 한 건 맞지 않습니까? 예컨대 장관은 특임검사는 안 된다고 했는데 다시 총장이 특임검사 유사한 제도를 제안한 것입니다. 그건 장관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했다, 대검이 오히려 장관 지시를 어깃장을 놨다 이렇게 볼 여지도 있고요. 한편으로 언론보도가 사실이라면 법무부가 마치 총장으로 하여금 절충안을 내면 받아들일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결국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장관이 결국은 이걸 받아들일 생각이 없이 이걸 트집 잡아서 다른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의심을 하게 되는 거죠.

☏ 진행자 > 그럼 법무부 검찰국이 움직인 게 추미애 장관이 보고나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였다고 볼 여지도 있는 것 아닌가요. 변호사님. 그 점은 어떻게 보세요?

☏ 김경수 > 보통의 경우에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 진행자 > 그래요. 그럼 추미애 장관이 뒤집었다, 이렇게 봐야 되는 겁니까? 그러면

☏ 김경수 > 그 가능성은 좀 더 많다고 봅니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그 시한이 오늘 오전 10시로 못 박혀 있지 않습니까?

☏ 김경수 > 그렇습니다.

☏ 진행자 > 추미애 장관이 어떤 선택을, 지금 변호사님 진단에 따르면 윤석열 총장 사퇴를 바라보고 있다면 그러면 지금 언론이 전망하는 것처럼 바로 감찰 카드를 추미애 장관이 꺼낼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될까요?

☏ 김경수 > 어젯밤 9시 50분 정도 상황으로 추미애 장관은 이미 거부를 했습니다. 윤석열 총장의 절충안. 그러니까 특임검사 유사한 제도를 거부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그러면서 어떤 지시를 했느냐 하면 장관이 내 지시를 문언 그대로 이행하라, 이렇게 지시했습니다. 그게 페이스북에 올렸는지 저는 잘 모르겠는데 그게 장관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갈 길이라는 게 다른 길이 잘 없습니다. 결국은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 카드를 꺼내서 징계 쪽으로 가려고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진행자 > 감찰 카드가 꺼내지는 순간에 검찰총장의 직무가 정지됩니까? 규정상?

☏ 김경수 > 직무 정지는 따로 장관이 직무 정지 명령을 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 진행자 > 또 따로 해야 되는 겁니까? 자동모드가 아니라.

☏ 김경수 > 자동은 아닙니다.

☏ 진행자 > 그런데 법무부 장관이 총장에 대한 감찰 이야기를 꺼낸 전례가 딱 한 번,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채동욱 당시 총장에 대해서 했을 때였고 이때 채동욱 총장은 바로 사퇴를 하지 않았습니까?

☏ 김경수 > 그렇습니다.

☏ 진행자 > 만약에 추미애 장관이 감찰 카드를 꺼낸다면 윤석열 총장도 그렇게 할 거라고 전망하시나요? 변호사님.

☏ 김경수 >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그쪽하고 얘기를 한 적도 없고 하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윤석열 총장이 해온 여러 과정을 살펴보면 이미 윤석열 총장이 만약 장관이나 대통령 뜻이 자기에 대한 신뢰를 거뒀다고 생각해서 사표를 내려면 이미 여러 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직을 안 하고 현재까지 버텨온 걸로 봐선 이 상황에서도 사퇴를 할 것 같진 않습니다.

☏ 진행자 > 설령 추미애 장관이 감찰 지시를 하더라도?

☏ 김경수 > 네, 그렇습니다. 타이밍을 총장으로서 그 타이밍을 놓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진행자 > 아, 오히려 총장이 사퇴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 김경수 > 제가 말씀드리는 건 총장으로서 만일 여권이나 장관과 이런 관계설정이 지금 아주 어색한 관계가 돼 있지 않습니까?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관계가 됐는데 보통 같으면 신뢰할 수 없다는 사인이 왔을 때 보통은 사퇴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그러나 윤 총장은 그런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퇴를 거부해왔거든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상황에서도 역시 사퇴를 거부할 것 같다, 이런 추측입니다.

☏ 진행자 > 만약에 변호사님께서 전망하신 대로 상황이 전개가 된다면 다시 한번 정리하면 추미애 장관은 감찰지시를 하고 윤석열 총장은 직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그대로 대응하게 된다면 사상 초유로 총장에 대한 감찰이 시작되는 거잖아요. 검사들이 어떻게 반응할 거라고 전망하십니까? 변호사님.

☏ 김경수 > 글쎄요. 그것도 제가 정확히 2500명 전체 검사들의 의사가 어떤지 모르겠는데 지금 어쨌든 검사들도 마찬가지고 국민들도 마찬가지고 이 상황에 대해서 굉장히 염려하고 때론 짜증스럽게 생각도 하고 이런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지금 우리 추미애 장관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 너무 직설적이고 예를 들어 어제같이 ‘내 말을, 내 지시를 문언대로 이행하라’ 이런 말들은 장관과 총장의 관계에서 그리 적합한 적절한 말이 아니라고 봅니다. 목적 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서로 절충도 할 수 있고 서로 양보도 할 수 있고 대화도 할 수 있는 것이지 그걸 내가 한 번 낸 지시이기 때문에 문언대로 해라, 그대로 이행하라, 이런 것들은 지금까지 총장과 장관 사이에 볼 수 없었던 현상이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진행자 > 쉽게 얘기하면 추미애 장관의 직설적인 표현이 오히려 윤석열 총장의 퇴로나 다른 선택의 여지를 좁혀버렸다, 이렇게 보시는 거군요.

☏ 김경수 >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건이 이렇게까지 커져야 되는 건이냐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촉발됐던 가장 결정적 계기가 이동재 전 기자 쪽이 요청했던 전문수사자문단을 윤석열 총장이 받아들인 것이 가장 결정적인 폭발점이었다, 이렇게 보는 시각이 많던데요?

☏ 김경수 > 시작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 진행자 > 이걸 어떻게 평가하세요? 변호사님.

☏ 김경수 > 저는 그 당시에 채널A 사건이란 게 총장의 측근 검사가 관련된 사건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검찰총장은 처음부터 저는 수사지휘를 자제하고 특임검사 유사한 제도로 갔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총장이 전문수사자문단을 꾸리겠다고 하고 본인의 지휘권을 계속 유지하겠다고 한 것 자체는 잘못됐다고 봅니다. 그 점은 잘못됐지만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지금 이 상황이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보면 윤 총장이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 이후부터 있었던 윤 총장 사퇴 시키려는, 윤 총장을 물러나게 하려는 어찌 보면 여권전체 흐름과 관계가 있고 그것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하나의 미션으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마무리해야 되는데 앞서서 변호사님께서 주셨던 말씀을 정리하면 이 상황을 풀 수 있는 해법은 사실 특임검사로 가는 것 외에는 없지 않느냐, 이런 말씀이신 거죠? 정리하면.

☏ 김경수 > 우선 실무적 기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말씀 여기까지 들을게요. 고맙습니다. 변호사님.

☏ 김경수 > 네.

☏ 진행자 > 지금까지 대구고검장을 역임했던 김경수 변호사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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